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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

(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)
국보 | 석비 | 1기 | 1962.12.20
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-1 | 신라 진흥왕 | 국유 | 창녕군

빛벌가야(지금의 창녕)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수(巡狩:두루 돌아다니며 순시함)하며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. 당시 빛벌가야는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¸ 진흥왕 16년(555) 신라에 병합되어 하주(下州)로 바뀌었고¸ 565년에는 대야주(지금의 합천)와 합쳐져 비사벌군(比斯伐郡) 또는 비자화군(比自化郡)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.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으로¸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¸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. 다른 순수비와 달리 ‘순수관경(巡狩管境)'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(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)라 일컫고 있으나¸ 임금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비에 속한다 할 수 있다.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나¸ 후반부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. 다른 순수비의 내용을 참고할 때 대략 진흥왕이 빛벌가야를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과 왕의 통치이념¸ 포부 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¸ 후반부에 당시 왕을 수행하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¸ 직위¸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당시 지방행정조직¸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. 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진흥왕 22년(561)으로¸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. 또한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『삼국사기』의 기사를 보완해줌으로써¸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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