용어,문화재 홈 > 문화재 상세정보
리스트로 글자크게 글자작게 프린트

남계원칠층석탑

(南溪院七層石塔)
국보 | 석탑 | 1기 | 1962.12.20
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국립중앙박물관 | 고려시대 | 국유 | 국립중앙박물관

경기도 개성 부근의 남계원터에 남아 있던 탑으로¸ 예전에는 이 터가 개국사(開國寺)의 옛터로 알려져 개국사탑으로 불려져 왔으나¸ 나중에 남계원의 터임이 밝혀져 탑의 이름도 남계원칠층석탑으로 고쳐지게 되었다. 1915년에 탑의 기단부(基壇部)를 제외한 탑신부(塔身部)만 옮겨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고 있으며¸ 이후 재조사에서 윗층 기단의 나머지부분이 새로이 발견되어 지금의 탑 옆에 따로 놓아 두었다. 탑은 2단의 기단에 7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¸ 얼핏 보면 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는 듯하나 세부적으로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여준다. 먼저 기단은 신라의 일반형 석탑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훨씬 높아졌고¸ 상대적으로 2층 기단이 약간 낮아져 있다.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1개의 돌로 조성하였으며¸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 두었다. 지붕돌은 두툼해 보이는 처마가 밋밋한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심하게 들려져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¸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이 얕게 새겨져 있다.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복발만이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남아있다. 현재 원래의 기단부가 옆에 따로 떨어져 있어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은 이 탑은 고려 중기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. 탑 전체에 흐르는 웅건한 기풍과 정제된 수법은 신라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시대 석탑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. 1915년 탑을 옮겨 세울 때¸ 탑신부에서 두루마리 7개의 『감지은니묘법연화경』이 발견되었는데¸ 이는 고려 충렬왕 9년(1283)에 탑 속에 넣은 불교경전으로¸ 이 때 탑을 보수했음을 알 수 있다.


회원 로그인
아이디/비번 기억
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.
많이 본 글
댓글 많은 글
추천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