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寒松寺石造菩薩坐像) 국보 | 석불(동산) | 1구 | 1967.06.21 서울 종로구 세종로 1-57 국립중앙박물관 | 고려시대 | 국립중앙박물관 | 국립중앙박물관
원래 강원도 강릉시 한송사 절터에 있던 보살상으로 1912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¸ 1965년 조인된 ‘한일협정'에 따라 되돌려 받았다. 잘려진 머리 부분을 붙일 때의 흔적과¸ 이마 부분의 백호(白毫)가 떨어져나가면서 입은 손상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.
머리에는 매우 높은 원통형의 보관(寶冠)을 쓰고 있으며¸ 상투 모양의 머리(육계)가 관 위로 높이 솟아 있다. 볼이 통통한 네모난 얼굴에는 눈이 가느다랗게 새겨져 있고¸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 있다.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(三道)가 그어져 있으며¸ 3줄의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.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. 검지 손가락을 편 오른손은 연꽃가지를 잡고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¸ 왼손 역시 검지 손가락을 편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. 발은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를 밖으로 하고 있어서 같은 곳에서 발견된 한송사지 석불상(보물 제81호)과 반대이다.
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데 비하여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. 조각 수법과 아울러 재료에서 오는 질감이 좀 더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. 약간 오른쪽으로 향한 듯한 얼굴과 몸은 풍요로우며¸ 조각수법 또한 원숙하고 정교하다. 원통형의 보관이나 풍만한 얼굴¸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(보물 제84호)과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(보물 제139호)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인데¸ 이들보다 한층 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만든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로 추정된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