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懲毖錄) 국보 | 원고본 | 1책 | 1969.11.07 경북 안동시 | 조선 선조 | 유영하 | 김영운¸김규익
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(1542∼1607)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.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.
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¸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다. 명종 21년(1566)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예문관검열¸ 공조좌랑¸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.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장군인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¸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¸ 성곽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군비확충에 노력하였다. 또한 도학·문장·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¸ 그가 죽은 후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¸ 안동의 병산서원 등에 모셔졌다.
이것을 저술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유성룡이 조정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낼 때 전란 중의 득실을 기록한 것이다.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¸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이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.
필사본『징비록』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(1647)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. 또한 이것은 숙종 21년(1695) 일본 경도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으며¸ 1712년에는 조정에서『징비록』의 일본유출을 금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았다.
이 책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『난중일기』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