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蔚珍鳳坪新羅碑) 국보 | 석비 | 1기 | 1988.11.04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 | | 국유 | 울진군
삼국시대 신라의 비석으로¸ 1988년 마을 주민이 밭갈이를 하던 중에 발견되었다.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에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나¸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.
비는 자연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¸ 전체적인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깝다. 비문은 한쪽 면에만 새겨져 있는데¸ 글자수는 400자 정도이다. 글씨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조의 영향을 받은 해서체이나¸ 예서체의 모습도 보인다.
내용은 전형적인 한문이 아니라 신라식의 독특한 한문체를 사용하여 파악이 어렵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짐작할 만하다. 기본 줄거리는 울진 지방이 신라의 영토로 들어감에 따라 주민들의 항쟁이 일어나자¸ 신라에서는 육부(六部) 회의를 열고 대인(大人)을 보내어 벌을 주고¸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.
신라가 동북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건립한 비로¸ 법흥왕 11년(524)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사회 전반에 걸치는 여러 면들을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. 또한 법흥왕 때의 율령반포와 육부제의 실시¸ 왕권의 실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