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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산도이충무공유적

(閑山島李忠武公遺蹟)
사적 | 사묘¸제단 | | 1963.01.21
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875 | 조선시대 | 통영충렬사 |

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(1545∼1598)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.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¸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. 선조 25년(1592)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¸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진해전¸ 당항포해전¸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¸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.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¸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¸ ‘충무(忠武)'라는 시호가 내려졌다.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¸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·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. 선조 25년(1592) 이곳에 제승당을 짓고¸ 26년(1593)부터 30년(1597)까지¸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. 그러나 선조 30년(1597)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. 그 후 영조 15년(1739)에 제승당과 함께 ‘제승당유허비'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¸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.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‘운주당'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‘제승당'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.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‘충무사'와 ‘한산정'¸ ‘수루'등이 있으며¸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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