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晋州城) 사적 | 성지(성곽) | | 1963.01.21 경남 진주시 남성동¸ 본성동 | 조선 세종 | 국유¸공유¸사유 | 진주시
진주는 경상남도의 중요 지역으로서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거열성 또는 거타성으로 불렸으며¸ 신라의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주(州)를 설치하였다. 이후로 명칭이 계속 바뀌어오다가 조선 성종 14년(995)에 지금의 진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.
고려 후기에 왜구를 막는 기지로 만들어졌으며¸ 선조 25년(1592)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전라도 지방으로 나가려는 왜적을 막는 주요기점이 되었다. 행주대첩·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손꼽히는 진주성 전투는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수의 왜적을 무찌른 전투로¸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는 6만여 명의 백성·군인들이 힘을 합쳐 끝까지 싸웠다. 논개가 적군의 장수를 안고 남강에 빠졌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.
조선시대의 읍성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성으로¸ 600m 둘레의 내성과 약 4㎞ 둘레의 외성으로 되어있다. 성의 북쪽으로는 3개의 연못을 파서 연결하여¸ 성 가까이 가려면 어디에서나 물을 건너야만 하도록 되어있고¸ 성의 외곽으로는 성을 둘러싼 못을 파서 남강에 연결되도록 하였다.
성과 주변에는 선사시대 이래의 각 시대 유물들이 나오는 옛 무덤들과 유적이 많이 있으며¸ 국립진주박물관이 성 안에 자리잡고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