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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암사지

(檜巖寺址)
사적 | 사지 | | 1964.06.10
경기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산14 | 고려 충숙왕<재> | 국유¸사유 | 양주군

고려 충숙왕 15년(1328)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.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. 조선 전기에 이색(李穡)이 지은『천보산회암사수조기』에 의하면¸ 고려 우왕 2년(1376) 지공의 제자 나옹이 “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”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.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¸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¸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.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.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¸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. 이 절이 있던 자리에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지금의 회암사가 있는데¸ 그 부근에는 중요 문화재들이 남아있다.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(보물 제387호)를 비롯하여¸ 지공의 부도 및 석등(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)·회암사지부도(보물 제388호)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다. 이 사찰은 평지가 아닌 산간지방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있는 절에서 볼 수있는 남회랑을 만든 점에서 고려시대의 궁궐이나 사찰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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