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康津大口面陶窯址) 사적 | 도요지 | | 1963.01.21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산4외 | 고려시대 | 국유¸공유¸사유 |
고려시대 토기나 청자를 굽던 가마터로¸ 강진 대구면 용운리·계율리·사당리·수동리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.
남쪽은 바다와 가까워 해로를 통한 수송이 발달했고¸ 북으로는 크고 작은 산과 가까워 땔감이 풍부하였다. 또한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와 규석이 산출되어 도자기를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.
용운천 좌우에 집중적으로 가마터가 있는데¸ 용운천 상류에 위치한 용운리에는 75곳의 가마터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. 이 중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마터는 고려 전기에 성립된 곳으로 청자의 기원과 초기청자의 특징을 밝힐 수 있는 지역으로 중요하다.
계율리는 현재 59곳의 가마터가 남아 있으며¸ 고려 전기와 후기에 양식화된 상감청자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.
용운천 하류의 비교적 넓은 들에 있는 사당리에는 43곳의 가마터가 있으나¸ 하천의 침식과 개간·도굴들로 심하게 파손되어 있는 상태이다. 최고 수준의 청자가 만들어지던 고려 중기와 후기의 가마터로¸ 청자 절정기의 비색과 상감청자를 비롯한 고려청자의 여러 특징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.
수동리는 사당리 남쪽의 들판에 있는 마을로 6곳의 가마터가 있으며¸ 대체로 고려 후기의 것이다. 도자기의 형태와 기법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¸ 유약의 색과 모양도 매우 다채롭다.
이와 같이 대구면 일대에는 고려 전 시대에 걸치는 가마터가 남아 있으며¸ 각 시기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. 전라북도 부안의 청자가마터와 함께 고려청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가마터라 할 수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