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石柱關七義士墓) 사적 | 묘 | | 1963.01.2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171 | 조선 선조 | 사유 |
정유재란 때 전라도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사(義士) 7명의 무덤이다.
석주관은 경상도지방에서 전라도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. 안음의 황석산성·진안 웅치·운봉 팔량치와 함께 영남과 호남 사이의 4대 관문의 하나로¸ 고려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.
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호남지방을 목표로 하여 이곳을 집중공격하였다. 그러자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적에게 대항하였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. 그후 왕득인의 아들과 각 지역에서 모여든 의병·승병들이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¸ 역시 대부분의 의병을 희생시킨 채 끝나고 말았다.
순조 4년(1804) 나라에서 왕득인을 포함한 7명의 의사에게 각각 관직이 내려졌고¸ 1946년에는 뜻있는 지방 유지들에 의해 칠의각과 영모정이 세워졌다.